목욕을 좋아하는 은재가 며칠 목욕을 못하게 되었다. 목욕을 시키다가 실수로 샤워기의 뜨거운 물이 아이의 몸에 닿아버린 것이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으나, 발목에 손톱만한 기포가 생겼다. 2도 화상. 아이는 물에 몸이 닿아 좋아 웃다가, 별안간 닥쳐온 통증에 자지러지게 울었다.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옆에서 아이 엄마는 따라 울었다. 급하게 차가운 물로 화기를 가라앉혔으나, 아이의 울음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고, 결국 응급실까지 갔다. 

일전에 손가락에 화상을 입은 적이 있다. 전대 상대 뒤에 허름하지만 맛이 좋은 곱창집이었다. 많이 아팠다. 나는 시워한 소주에 손가락을 담궈놓고, 다른 손으로 내장과 알콜을 계속 입에 가져갔던 것 같다. 그러는 와중에도 손가락은 정말 아팠다. 기포가 생겼고, 며칠 고생한 기억이 난다. 하루밤이 지난 토요일 아침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흉터가 생기진 않을 것이라고 한다. 아이는 엄살도 없는 걸까. 오늘 하루 생글생글 잘 놀았다. 

신생아 안전 사고는 거의 집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조심해야겠다. 미안, 미안해 은재야. 많이 아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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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샤워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난 씻는 걸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다. 귀찮다고 느끼는 편이었다. 부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 같은 성향의 인간이 많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여름이면 어쩔 수 없다. 흐르는 물에 땀을 씻어내는 것이, 귀찮음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쾌적함을 가져다 주니까. 내 특유의 귀차니즘은 은재가 태어나고 많이 완화되었다. 이것이 부모 노릇이라는 걸까? 어렸을 때 늘 궁금했다. 우리 엄마는 왜 저렇게 부지런한 걸까!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고 돈도 벌어오며 심지어 책도 읽고 시도 습작했었다(당시 어머니의 시를 난 어렴풋 기억하고 있다. 시 중에 '노스탤지어'라는 단어가 있어서 그 뜻을 물어봤던 것이다). 

이제 나는 총각 때와는 많이 달라져서, 집에 들어오면 손부터 씻고, 옷을 갈아입고 꼬박꼬박 도시락을 꺼내 설거지도 하고, 애기랑 놀아주고 막 그런다. 달라졌나? 모르겠다.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삶의 패턴에 진입한 걸지도 모르지. 

내가 부지런해졌다고 자랑하고자함은 아니다. 뭐 딱히 바지런히 움직이는 것도 아니니까. 다만 아이 낳고 키우는 게 그렇게까지 두렵고 부담스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 아이가 태어남은, 내가 다시 태어남의 다른 이름이다. 리셋되는 인생. 누구나 꿈꾸지 않은가. 물론 이 모든 건 남자의 입장이다. 여자들이 겪는 심원의 고통과 환희, 고난과 행복을 남자는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은재는 목욕을 매우, 좋아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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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nnnnn 2013.05.29 23:57


민어야, 부르면 고향 초등학교에서 가장 예쁘고 공부도 잘 하는 여자아이가 응, 대답할 것 같다. 민어야, 부르면 동네에서 제일 아리땁던 누나가 하얀 덧니를 드러내며 응, 대답할 것 같다. 민어야, 부르면 그래,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이 불쑥 손을 흔들며 인사해 올 것만 같다. 민어, 아름답고 부드러우며 빛나고 큰, 어떤 시간.

여름이면 외가 식구가 모여 바캉스 비슷한 것을 즐겼다. 모두 바다를 가까이에 두고 있기에 따로 해수욕장을 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살기가 팍팍하고 괴로워서 그랬을 것이다. 한여름 지도(전남 신안군 위치) 선착장에 모인 5딸의 남편들, 그러니까 동서들은 어이, 자네 왔는가. 형님 이제 오셨소, 하며 투박한 인사를 건넸다. 이모들은 벌써 저만치서 자기들끼리 수다에 한창이고 사촌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어른들을 골탕 먹일 묘수를 찾고 있었다.

선착장에 쿨럭쿨럭 도착한 철선 위로 이모부들은 재주껏 차를 대었다. 포텐샤, 엑셀, 에스페로, 프린스 같은 차들이 차례차례 배에 오르면 사촌들이 괴성을 지르며 배에 오르고 이모들이 양산을 접으며 아이들을 단속했다. 흰 거품을 원형을 흩뿌리며 배는 제 갈 길로 앞머리를 튼다. 이윽고, 임자도에 대가족은 도착하고, 그곳에서 우리는 크고 둥글게 모여 앉아 어른은 어른끼리 아이는 아이끼리 각자의 소리를 내어 하나의 목소리로 만들며, 뭔가를 먹었다.

임자도에는 민어라는 생선이 많이 잡혔다. 이름에서 갈치나 전어와는 비교가 불가한 미학적 완결성이 느껴진다. 민어는 일단 위풍당당 몸이 크다. 회를 뜨거나 매운탕으로 끓이기 까다로운 편이나 일단 훌륭한 조리사를 만나면 그 빛을 더한다. 광어나 우럭에 그 기품을 비교할 수 없으며, 일명 스키다시라 불리는 밑반찬의 도움 없이도 한 마리면 웬만한 식구는 모두 배부르게 할 수 있다.

민어는 윤기가 반들반들하고 하얀 속살이 아스라하다. 믿을 수 없이 쫄깃하며 가늠할 수 없이 담백하다. 한 마리를 회로 뜨면 2개 가족은 족히 먹고, 다음날 전까지 부쳐 먹을 수 있다. 민어는 바다생선 특유의 완강함도 덜하여, 회는 흡사 네발짐승인 소의 육회와 흡사한 맛과 향이 난다. 와사비나 초고추장보다는 된장이나 매운 고추와 궁합이 잘 맞는다. 보통 회보다 두껍게 썰어 씹는 입안에서 오물오물 돌아다니는 맛을 더한다.

민어의 살을 바르는 동안, 이모들은 미리 준비해 온 반찬들을 꺼낸다. 참기름과 참깨로 양념한 된장과, 묵은 김치를 살짝 볶은 것, 큰 이모가 집 앞마당에서 기른 깻잎 같은 것들이다. 어머니의 다섯 여자 형제들은 신안군 압해도에서 태어나 전라도의 몇몇 고장으로 시집을 갔다. 목포, 해남, 광주 등지에 그들은 또 다른 섬을 이루어 삶을 지속했다. 매운 고추와 마늘을 썬다. 장난치는 아이의 등짝을 후려치거나(셋째 이모의 손이 매웠다), 과음하는 남편에게 눈치를 줬다. 그리고 민어가 나오면 깻잎에 하얀 민어회 한 점 턱하니 올리고, 다른 손에는 소주를 들었다. 따라놓은 소주처럼, 시간을 흘렀다. 이제, 이모들은 누구의 할머니가 되었고, 좀처럼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둥글게 앉을 시간을 내지 못한다.

더 이상 키가 크지 않는 시간이 되고부터, 민어를 쉽사리 접하지 못했다. 서울로 거처를 옮긴 후로, 민어는 더욱 귀한 생선이 되었다. 민어, 라고 발음하면 그때 젊었던 이모들이 역시 젊었던 이모부들을 앞세우고 매운 고추처럼 알싸한 사투리 들려줄 것만 같은데……. 조선시대, 민어의 부레는 아교로 쓰였다고 한다. 가내수공업으로 물건을 만들던 때, 민어는 오공 본드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다시 찾아올 여름에는 더 늦기 전에 이모들을 모두 모시고, 지난 시간을 꼼꼼히 붙여봐야 할 것 같다. 두껍고 찰지고 고소하고 부드러운 민어를 앞에 두고. 



*2012년 10월 <얼루어>에 발표했던 글입니다. 




임자도 / 섬

주소
전남 신안군 임자면
전화
061-275-3004
설명
임자도 북쪽 전장포는 해마다 1천여 톤의 새우를 건져내 전국 새우젓 어획고의 60%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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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메세나폴리스에 출근했다. 지하 대형마트와 1~2층 아케이드에 유아용품 점이 그럴듯하다. 물론 그 이유보다는, 내가 원래 쇼핑 공간을 좋아한다. 미츠코시 백화점을 찾아가던 이상처럼...은 아니고, 그냥 보통 사람처럼 말이다. 

<은재 고모와, 은재 엄마... 그리고 조금은 외로운 표정의 은재>


작년 선거 국면에서 합정 홈플러스는 여럿의 입방아에 올랐는데, 내 입도 그 중 하나였다. 자가용으로 불과 10분 정도 거리에 같은 업체의 대형마트가 자리하고, 근처에는 지역 재래시장이 있다. 시장 상인은 물론 입점 반대. 내가 찍은 야당 국회위원도 반대, 내가 지지한 대통령 후보도 반대했다. 구청장도 반대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홈플러스는 번듯하게 입점했고 난 어제 거기서 분유와 아이 턱받이를 샀다. 

선거 이후로 피식피식 잘 웃는다. 벌써 여름인데... 생활의 실천이 안 되니, 이제 입으로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가 굴러가는 강고함의 가장자리에라도 한자리 걸치고 싶은 심정이다. 걍팍한 세상에 지처 얄팍해졌다. 

어젠 아이의 100일이었는데, 뒤집기를 시전했다. 외출을 위해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아이가 지구에 배를 깔고, 우주에 등을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 작은 몸을 뒤집기 위해 며칠을 낑낑거리더니, 드디어 해냈다. 조금 장했다. 천사둥이는 뭐든 느리다고 하더니, 심장 수술 이후로는 늦는 것도 모르겠고, 그냥 보통 아이 같다. 그래서 기대하다가 그 기대가 무너질 날, 누군가를 또 원망할까봐 스스로를 단속 중이다. 

대형마트에 다니면서 허허실실 단속하기. 

곰곰 생각하니, 아이에게 공부를 잘 하라. 안정된 직장을 가져라. 능력있는 남자를 만나라...같은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되니, 참말 좋다. 아직 내 삶의 사이클은 위의 헛된 요구사항에서 몇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한 것 같다. 

어쨌든, 나도 뒤집어야겠다. 응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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