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맥주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방금 소중한 사람이 집에 다녀갔다. 은재는 조금 낯을 가리는 것 같았다. 방금까지 서럽게 울다가, 다시 웃다가, 그랬다.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악기 ‘마림바’가 나오는 부분에서 격하게 웃는다. 마림바를 사야 하나? 아직 둘 곳이 없다. 블로그 포스팅을 야심차게 시작했으나 벌써 방치 모드. 그러면 곤란하지. 아이는 쉬지 않고 자란다. 시간을 가장 정확하게 증명하는 건 은재다. 하나씩 둘씩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


저번 주에는 정릉에 있는 다운복지관에 다녀왔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예정 시간보다 30분 먼저 도착하게 되었다. 은재는 차를 잘 타는 아이, 앞뒤로 꽉 막힌 출근길은 처음이었지만 그것조차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경차가 주는 진동에 몸을 맡기고 새근새근 졸았다. 복지관에 계신 분들은 모두 친절했다. 다운증후군 분들이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 어떤 분이 밀걸레질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먼저 인사를 해왔다. 나는 최대한 말끔하게 안녕하세요, 했다. 차례를 기다리면서 복도에 아이를 안고 앉았었다. 다운증후군 소년 소녀들이 무슨 수업을 받으러 오는 것 같았다. 남자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투닥거리며 지나가고, 어린 여자 아이는 은재를 보며 수줍게 웃어주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다운복지관 첫 상담은 천사둥이를 맞이하여 첫걸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내해주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대부분은 여러 경로로 얻은 정보들이었지만, 인터넷의 익명이 아닌 전문가의 육성으로 들으니 비로소 실감이 왔다. 어린이집도 알아봐야 하고, 재활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도 단계적으로 밟아야 한다. 보바스, 보이타 치료라는 걸 배웠다. 집에서 조금씩 하고 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동영상이든, 사진이든 찍어서 포스팅할 계획. 그곳에서 들은 반가운 말은 “최근 들른 아이 중에 가장 발달이 좋다”는 치료 선생님의 전언이었다. 기뻤다. 집에 오는 길은 플로리다의 해변고속도로(물론 가본 적 없다)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아이가 무언가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을 때, 모든 부모의 심정은 저와 비슷해지겠지. 나는 시험에 100점을 받고 전교 1등을 한 아이를 둔 부모가 되어 본다. 잘 했다. 내 딸. 너는 저 아이보다 월등하구나. 


시간이 지나 지금 맥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우리는 아이를 통한 대리경쟁을 즐긴다. 천사둥이를 갖고 나서, 누군가와 경쟁시킬 일 없이, 그저 예뻐하기만 할 수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운증후군 어린이 카페에 가입하고, 많은 경우의 수를 검색하며 확인하면서, 우리 아이가 그 중에 나은 편이라는 다행스러운 사실을 확인하고 기뻐하는 나를 본다. 그게 왜 기쁘지? 기쁜 것이 당연하지만 한편, 기뻐하는 일을 무겁게 점검하는 것이다. 나는 은재에게 어떤 기대를 소유해서는 안 된다. 기대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증명을 위해서는 반성이 필수적임도 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 아이는 잘 해주고 있다. 잘 해주어서 예쁜 게 아니라, 예쁜 와중에 더구나 잘 해주고 있는 것이다. 기특하다. 기특한 와중에 잘 해주고 있어서.


오늘은 100일 촬영을 갔다가, 재촬영 날짜만 잡고 다시 집에 왔다. 예쁘게 촬영할 거라는 기대감은 또 산산히 부서져, 여름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100일 촬영 실패담은 다시 포스팅하겠다. 맥주를 마시며 너무 긴 글을 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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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nnnnn 2013.06.16 00:41
  • ㅅㅇ 2013.06.16 01:03 ADDR EDIT/DEL REPLY

    숙녀라 낯을 가리시는군...

  • 2013.06.16 04:38 ADDR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hyonnnnn 2013.06.16 12:20 신고 EDIT/DEL

      아... 사진 찍기는 정말 어려워요.
      카메라 기초반 수강해야 할까봐.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