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어야, 부르면 고향 초등학교에서 가장 예쁘고 공부도 잘 하는 여자아이가 응, 대답할 것 같다. 민어야, 부르면 동네에서 제일 아리땁던 누나가 하얀 덧니를 드러내며 응, 대답할 것 같다. 민어야, 부르면 그래,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이 불쑥 손을 흔들며 인사해 올 것만 같다. 민어, 아름답고 부드러우며 빛나고 큰, 어떤 시간.

여름이면 외가 식구가 모여 바캉스 비슷한 것을 즐겼다. 모두 바다를 가까이에 두고 있기에 따로 해수욕장을 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살기가 팍팍하고 괴로워서 그랬을 것이다. 한여름 지도(전남 신안군 위치) 선착장에 모인 5딸의 남편들, 그러니까 동서들은 어이, 자네 왔는가. 형님 이제 오셨소, 하며 투박한 인사를 건넸다. 이모들은 벌써 저만치서 자기들끼리 수다에 한창이고 사촌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어른들을 골탕 먹일 묘수를 찾고 있었다.

선착장에 쿨럭쿨럭 도착한 철선 위로 이모부들은 재주껏 차를 대었다. 포텐샤, 엑셀, 에스페로, 프린스 같은 차들이 차례차례 배에 오르면 사촌들이 괴성을 지르며 배에 오르고 이모들이 양산을 접으며 아이들을 단속했다. 흰 거품을 원형을 흩뿌리며 배는 제 갈 길로 앞머리를 튼다. 이윽고, 임자도에 대가족은 도착하고, 그곳에서 우리는 크고 둥글게 모여 앉아 어른은 어른끼리 아이는 아이끼리 각자의 소리를 내어 하나의 목소리로 만들며, 뭔가를 먹었다.

임자도에는 민어라는 생선이 많이 잡혔다. 이름에서 갈치나 전어와는 비교가 불가한 미학적 완결성이 느껴진다. 민어는 일단 위풍당당 몸이 크다. 회를 뜨거나 매운탕으로 끓이기 까다로운 편이나 일단 훌륭한 조리사를 만나면 그 빛을 더한다. 광어나 우럭에 그 기품을 비교할 수 없으며, 일명 스키다시라 불리는 밑반찬의 도움 없이도 한 마리면 웬만한 식구는 모두 배부르게 할 수 있다.

민어는 윤기가 반들반들하고 하얀 속살이 아스라하다. 믿을 수 없이 쫄깃하며 가늠할 수 없이 담백하다. 한 마리를 회로 뜨면 2개 가족은 족히 먹고, 다음날 전까지 부쳐 먹을 수 있다. 민어는 바다생선 특유의 완강함도 덜하여, 회는 흡사 네발짐승인 소의 육회와 흡사한 맛과 향이 난다. 와사비나 초고추장보다는 된장이나 매운 고추와 궁합이 잘 맞는다. 보통 회보다 두껍게 썰어 씹는 입안에서 오물오물 돌아다니는 맛을 더한다.

민어의 살을 바르는 동안, 이모들은 미리 준비해 온 반찬들을 꺼낸다. 참기름과 참깨로 양념한 된장과, 묵은 김치를 살짝 볶은 것, 큰 이모가 집 앞마당에서 기른 깻잎 같은 것들이다. 어머니의 다섯 여자 형제들은 신안군 압해도에서 태어나 전라도의 몇몇 고장으로 시집을 갔다. 목포, 해남, 광주 등지에 그들은 또 다른 섬을 이루어 삶을 지속했다. 매운 고추와 마늘을 썬다. 장난치는 아이의 등짝을 후려치거나(셋째 이모의 손이 매웠다), 과음하는 남편에게 눈치를 줬다. 그리고 민어가 나오면 깻잎에 하얀 민어회 한 점 턱하니 올리고, 다른 손에는 소주를 들었다. 따라놓은 소주처럼, 시간을 흘렀다. 이제, 이모들은 누구의 할머니가 되었고, 좀처럼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둥글게 앉을 시간을 내지 못한다.

더 이상 키가 크지 않는 시간이 되고부터, 민어를 쉽사리 접하지 못했다. 서울로 거처를 옮긴 후로, 민어는 더욱 귀한 생선이 되었다. 민어, 라고 발음하면 그때 젊었던 이모들이 역시 젊었던 이모부들을 앞세우고 매운 고추처럼 알싸한 사투리 들려줄 것만 같은데……. 조선시대, 민어의 부레는 아교로 쓰였다고 한다. 가내수공업으로 물건을 만들던 때, 민어는 오공 본드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다시 찾아올 여름에는 더 늦기 전에 이모들을 모두 모시고, 지난 시간을 꼼꼼히 붙여봐야 할 것 같다. 두껍고 찰지고 고소하고 부드러운 민어를 앞에 두고. 



*2012년 10월 <얼루어>에 발표했던 글입니다. 




임자도 / 섬

주소
전남 신안군 임자면
전화
061-275-3004
설명
임자도 북쪽 전장포는 해마다 1천여 톤의 새우를 건져내 전국 새우젓 어획고의 60%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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