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폭우 속 우산

 

우리는 물에 닿았어요. 물은 따뜻하고 정말로 맑았어요. 둥근 조약돌과 작은 고기들이 반짝이는 모습이 물속으로 보였어요. 우리는 물속으로 들어갔어요.

-모신 하미드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다니던 학교 후문에는 적당히 촌스럽고 적당히 예쁜 카페가 몇 있었는데, 애인(훗날 나의 아내가 될 분)과 나는 거기 어디 창가에 앉아 생과일주스나 헤이즐넛 같은 걸 먹고 있었던가 보다. 늦은 장마라 꾸물꾸물한 비구름이 창공을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었는데, 어쩐 일인지 우리는 꼭 우산을 하나만 갖고 다녔다. 그것도 아담한 사이즈로. 이쯤에서 꼭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무어냐고 묻는 바보는 설마 없겠지.

하늘에서 조그마한 액체들이 슬금슬금 낙하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작은 우산 속으로 둘이 들어가 안쪽 어깨를 서로에게 붙이고, 바깥쪽 어깨를 내리는 비에 내주고 걸었다. 애인을 기숙사에 데려다주기 위해서였다. 기숙사는 학교로 진입해 자연대와 공대, 운동장 같은 넓은 공간들을 지나쳐야 했다. 도착지는 아직 멀었는데, 빗방울이 굵어지더니, 누가 하늘에서 물 폭탄을 우리 둘에게 퍽퍽 던지는 것이었다. 우산은 몇 분 되지 않는 시간에 뒤집어져 날아가고, 때 마침 비를 피할 곳은 마땅치가 않고, 애인은 빗물인지 눈물인지 뒤범벅 흘리면서 숨이 쉬어지지가 않는다고 했다. 숨이, 숨이 안 쉬어져. 기도가 막혔나봐!

물론 숨이 안 쉬어지는 사람이 호흡이 곤란하다는 식의 의학적 자기 진단을 냉철하게 해낼 수는 없겠지. 애인은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던 것 같다. 대신 완전히 젖어버려서 조금 힘들어했던 건 사실이다. 젖어서 몸에 붙어버린 옷이 부끄러워서 울었던 것도 같다. 나는 그런 것보다는 백 팩에 김장독의 배추김치처럼 담겨 있던 5.2kg 중량의 후지쯔 노트북이 걱정이었지만, 입 밖으로 걱정을 꺼내진 않았다. 게릴라처럼 여기저기서 글을 쓰려고 산 노트북이었다. 정작 미니홈피에 사진 올리는 용도로 훨씬 많이 쓰인 기계다. 진짜 게릴라는 내가 아니라 도시를 습격한 대자연이었다. 짧은 시간 우리 앞에 쏟아졌던 비는 그날 저녁 지역 뉴스에 단신으로 다뤄졌다. 게릴라성 폭우.

 

상견례 하는 날, 비가 그렇게 내렸다. 우리 식구가 식당에 먼저 자리했는데, 30분 늦는다는 전갈이 20분 더, 그리고 또 10분 더 늘어나자, 내 초조함과 당혹감 또한 먹지 못한 라면처럼 불어났다. 나는 그때서야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십분 이해하게 되었다. 기도가 막히다 못해, 몸 바깥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땅콩만한 아이를 배에 담고서, 동생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약속 장소에 나오던 아내는 폭우처럼 울어버린 모양이었다. 사춘기인 막내 동생은 막내 동생대로 뭔가 부루퉁해서아마 이 결혼 자체가 맘에 안 들었으리라10대 남자가 주는 반항적 풍모를 폴폴 풍겨냈다. 비가 오든 안 오든 상견례는 원래 어려운 법이라는데! 상견례는 그렇게 예정된 시간에서 1시간을 더해서 시작했다.

 

*밥 먹으면서 트림을 자주하고 쩝쩝 소리를 내는 부장님과의 단 둘이 먹는 점심 백반.

*세상 가장 싫어하는 사람, 그 사실을 모르는 천진한 친구 녀석과 셋이서 먹는 파스타.

*전날 술을 죽자 살자 마시고 결국 살아나서 쓰린 속을 움켜쥐고 먹는 진득한 카레.

 

상견례 식사에 비하면 얼마나 평안하고 즐거운 식사들인가! 코스로 나오는 음식은 숨이 막히게 맛이 없었고, 특히 잡채는 말라 비틀어져, 기분을 더 잡쳐버렸다. 상견례는 우리네 혼인문화가 만든 지옥 중에 최고로 뜨겁고 어색한 지옥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하고 착하고 성실하며 존경스러운 우리의 부모들은 예의와 성심을 다해 어린 것들의 미래를 축복해주었다. 그리고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을 찬찬히 상의했다. 나는 듬직해 보이기 위해 자세를 바로 했고, 애인은 겸연쩍은 표정을 숨기려 고개를 숙였다. 바깥은 숨 막히게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얄미운 정도로 쨍한 해가 떠올랐다. ! 마지막에 나온 수정과는 조금 맛있는 것도 같았다! 정말이지, 다 잘 될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식사를 마치고 길에 나서자 다시 비가 쏟아진다. 날씨에 감정이나 희망 따위의 정서를 무심코 투영하다니, 어리석었다. 인간은 날씨가 어떠하든, 어깨가 비에 흠씬 젖든, 정수리에 눈이 함박 쌓이든, 아무래도 상관없이 목적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야 하는 존재. 그 와중에 그녀와 나는, 하나의 우산을 같이 들기로 하였으니, 그걸로 모두 되었다. 이토록 젖은 어깨도 언젠가는 보송보송 마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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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nnnnn 2013.07.15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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