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엄마가 말하길

후디니는 어머니가 쓰던 옷장 문을 열고 옷에서 나는 향기를 맡았다.

-E.L 닥터로 『래그타임』

아내는 난생처음 방문한 도시를 찬찬 살필 겨를도 없이, 그저 그곳에서 살아야 했다. 그녀는 신접살림을 차리기에는 다소 작은 크기의 집을 천천히 둘러본다. 괜찮네, 이 정도면. 생각보다 넓어. 말하고는 눕기 편한 자리를 찾아서 몸을 뉘였다. 그리고 긴 낮잠에 빠진다. 내가 급하게 구해놓은 집은 사실 생각보다 더 비좁았고, 그 정도면 정말 안 괜찮은 ‘투룸’에 불과했지만, 잠든 아내가 내는 규칙적인 숨소리를 따라 잠시 안도할 수 있었다.

결혼 준비의 시작은 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끝은 아마 집구하기로 정도가 되겠다. 말하자면 결혼 준비의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참담했다는 이야기. 물론 모아놓은 돈은 없었다. 덤벙거리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가 상경해, 온 동네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사투리를 뱉었다. 그래봐야 보여주는 집은 빤했다. 그것들은 좁고, 어둡고, 불편해보였으나 누군가는 거기에서 자고 먹고 사랑하고 있을 터였다. 나는 선뜻 그러할 자신이 생기지 않는 집이었다. 가진 돈에 비해 욕심이 과했다. 쉽사리 계약을 하지 못했다. 발걸음은 터벅터벅 서울의 외곽으로, 거기에 더해서 서울의 바깥으로, 지하철에서 걸어서 먼 곳으로 버스를 타야 전철을 탈 수 있는 곳으로, 오래 걸어 버스를 타고 다시 오래 달려 전철역에 닿는 곳으로 향했다. 그럴수록 어머니의 사투리가 자그마해졌다. 이것밖에 못해줘서 미안하다, 라고 말할까봐 짐짓 호기로운 척, 돈 모아서 늘리는 재미가 있지! 큰소리를 냈다. 우리는 서로 미안해하면서 서울을 빠져나갔다. 서울은 사람을 미안하게 만든다. 이유는 모르겠다. 모르겠어서 미안하다. 아무런 식당에 들어가 감자탕을 시켰다. 돼지고기 살을 바르면서, 어머니가 말한다.

맛이 하나도 없네. 여기는 어쩜 음식에 정성이 얄팍하대. 김치도 이게 뭐냐. 우리나라 고춧가루는 아닌 게 아주 확실해. 결혼하면 김치랑 반찬이랑 더 자주 보낼 테니까, 먹을 거 아끼지 말고 기죽지 말고 지내라. 아까 그런 집들은 못쓰겠더라. 그래도 결혼해서 서울로 처음 올라오는 내 식군데, 밝은 곳에서 시작해야지. 일단 밝은 집을 구해야겠다. 발품 팔면 나오겠지. 걱정 말거라. 어서 먹어라. 식는다. 서울은 원래 간장에 고기를 찍어 먹는 거냐? 별스럽다. 네 말이 맞다. 요즘은 크게 시작한다, 어쩐다, 하지만 원래 넓혀가는 재미도 있는 것이지. 엄마는 어쩌다보니 넓히면서 못살았다. 네가 커지면서 이상하게 점점 더 집은 쪼그라들더라만. (조금 웃음) 아까 봤던 집이 빛은 잘 들어오더라. 바로 앞에 공원이 있던데, 산책하기 좋겠든? 공원이라서 불량배들도 있고 막 그런 건 아니겠지? 하루 이틀 더 보고 아까 그 집 데려다 준 부동산에 전화하자. 사람 인상이 누굴 속여 먹게는 안 생겼더라. 내가 살다보니, 아들이 장가를 간다고 세상에 이렇게 같이 집을 보러 다닌다. 누군 아파트도 해주고 하다못해 전세라도 크게 해주겠지만 어쩌겠냐. 되는대로 살아야지. 평생 너 좁은 방에서 지내서 그것이 마음에 안 좋았는데, 결혼해서도 좁은 방에서 지낼 것 같아, 그것이 여간 안 좋다. 넓디넓은 방에서 큰 책상 놓고, 책장에 책들 가지런히 꽂아놓고 큰 창문 내어놓고 글을 쓰면 더 잘 될 것인데, 뭐든 그럴 것인데. 그렇지? 옛날부터 그랬다. 좁은 방에서 너는 나오지도 않고 혼자 거기에서 뭘 하는지 늘 궁금했어. 공부는 아니었을 테고, (또 웃음) 방에 오래 있는데, 그 방이 좁고 어둡고 그래서 그것이 안 좋았다니까. 너는 공부를 해도 엄마 몰래하고, 글도 엄마 몰래 쓰더라. 하긴 혼자 방에서 꼼지락꼼지락 하기에는 글이 딱 좋지. 이제 결혼하면 엄마는 진짜 더 모른다. 네가 더 좋은 곳으로, 넓은 곳으로, 밟은 곳으로 점점 더 가. 그렇게 가라. 알아서 가라. 뭐 하냐, 안 먹고. 일단 먹고 가. 그래. 먹는다. 먹어. 먹다보니 먹을 만하네. 응. 먹자.

그날 계약했다. 액수는 정해져 있으니, 나오는 집도 거기서 거기일 터였다. 요행을 바라기엔, 어머니의 발품도 이제 한계가 온 것이 확실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엄마의 어린 아들이 되어, 집을 함께 골랐던 것이다. 결혼하면 그녀의 도움을 쉬이 받기가 겸연쩍겠지. 어머니가 봐둔, 공원을 앞에 둔, 좁지만 그나마 쓸 만한 연립주택의 주인이 전세대출을 흔쾌히 받아들여 다행이었다. 그것을 꺼리는 사람도 많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주인들의 생태계는 내가 아직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그것을 이해하는 순간, 나는 다른 인간이 되어버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오싹해진다. 부동산에서 계약을 하는 동안 그런 생각이나 하고 앉아 있으니, 그럴 일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도 같고, 여전히 이 모든 것이 어렵고, 모르는 것이 많다. 몰라서 미안하다. 나를 미안하게 만드는 것은 서울이 아니었다. 그건 그냥 나의 일부였다. 그걸 염치라고 불러도 될까. 그때 감정에 아무런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한다. 민망하니까.

아내가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 청소를 해야겠다면서 몸을 일으킨다. 구석구석 더러운 지점이 많다. 보고서의 오타처럼 눈에 띈다. 입술 근처 뾰루지처럼 거슬린다. 그것을 고치고 짜내기로 한다. 사실 나는 누운 상태로 보던 야구나 계속 보고 싶지만, 뱃속에 땅콩이를 담은 아내가 방에서 등을 떼면 나 또한 더 누워 있을 방도가 없다. 사실 내가 먼저 움직여야 옳았다. 화장실 구석에 덜 닦인 곰팡이를 문지른다. 아내는 싱크대를 맡아서 광을 내고 있다. 안방도, 안방에 딸린 자그마한 베란다도, 다시 한 번 손봐야 한다. 작은방도, 작은방에 딸린 작은 창도 다시 닦아야 할 것이다. 생각보다 넓어서 골치가 아팠다. 좁기도 넓기도 한 우리의 첫 번째 집이 여기에 있다. 이곳에서 당분간 먹고 자고 사랑할 것이다. 젊을 적 어머니가 당신의 집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시큰한 마음을 감추지 못해, 철수세미를 쥔 손에 힘을 줘본다. 어쩐지, 손바닥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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